민족계몽의 의의를 담은 연애소설 무정
우리나라는 과거 정략결혼이라는 전근대적인 혼인 문화가 있었습니다. 정략결혼이란 집안에서 정해준 인연과 한평생을 약속하는 혼인 방식으로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성행하던 풍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에 기초한 혼인을 소재로 서사화한 작품이 있었는데요. 연재 당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정의 내용은 주인공 이형식은 경성학교 영어교사로 김장로의 딸 선형의 가정 교사 노릇을 하게 됩니다. 선형의 가정 교사 노릇을 하던 어느날 자신의 과거 정혼자이자 은사의 딸이던 영채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영채는 투옥된 애국지사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으나 딸이 기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영채를 매우 욕하며 후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영채는 기생으로 일하면서도 정혼자인 형식을 위해 순결을 간직하고 있었고 형식은 영채를 만나 선형과 영채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형식이 소속된 학교의 학감인 배학감에게 영채가 강간을 당해 순결을 잃고 형식의 집에 유서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영채는 자살을 하려다가 기차에서 동경 유학생인 신여성 병욱을 만나게 됩니다. 영채의 사연을 알게 된 병욱은 봉건적 가치관에 따라 타인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살아온 지금까지의 영채의 삶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그녀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충고합니다. 병욱의 도움을 받아 영채는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고 춤과 음악을 배우기 위하여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한편, 형식은 결단을 내려 선형과 약혼을 하였으며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다가 기차 안에서 병욱과 함께 가고 있던 영채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들은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고국으로 돌아와 문명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종래의 신소설과 구분되는 소설이자 연재 당시에 엄청난 인기와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문학사적으로 따지만 연애에 기초한 혼인을 최초로 서사화하였고 이를 근대적 삶의 실천이자 심지어 민족 계몽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집필한 이광수 작가는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광동리의 몰락한 양반 가정에서 소작농 이종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동학의 농민들에게 발견된 이광수는 곧 동학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으나 당국의 탄압으로 동학이 해체되자 1904년 수도 한성부로 상경하였습니다. 상경 이후 친일파 송병준이 이광수의 문학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친일 단체인 일진회에 이광수를 추천하여 그들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 학원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메이지 학원에서 수학하면서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광수는 1910년 경술국치가 발생한 직후 일제의 회유로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1915년 와세대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이후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업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데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학업을 그만두게 됩니다. 한편 1917년에는 결핵에 걸려 고생을 했는데 이때 이광수를 간호했던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학생 허영숙과 사귀게 됩니다. 1917년 신한청년당에 가입한 이광수는 신한 청년당 활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최초의 장편 소설인 무정을 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무정은 다음해 단행본을 내어 1만부가 팔렸습니다. 무정의 성공으로 그의 인기는 톱이었으며 이광수는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 문인으로 꼽히게되는데요. 이후 이광수는 여운형의 추천을 받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 독립신문의 발행을 맡게 됩니다. 1924년 민족개조론에 이어 동아일보에 민족적 경륜을 기고했다가 큰 물의를 빚고 동아일보에서 쫓겨나게 되며 이후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 등 많은 장편 소설들을 연재합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제가 그를 투옥하였으며 이후 이광수는 본격적으로 친일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여 일제의 학도병으로 나갈 것을 독려하는 연설을 합니다. 1945년 8월 16일 서울 근교 사릉에서 살면서 해방을 맞이하고 1949년 반민특위 체포자 제2호로 연행되나 아들이 혈서를 쓴 덕과 고혈압 증세가 심화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납니다. 그는 해방 이후 폐결핵으로 시달렸고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에게 모시기 정책의 일환으로 끌려갔고 무리하게 강계로 이동하여 병이 악화되게 됩니다. 이후 인민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광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지만 무정, 단종애사, 흙, 마의태자 등의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민족 계몽가로 활동하였으며 일본 제국 합리화 노선으로 전향하였는데요. 지금은 매국노 소리를 듣고 있는 인물이지만 앞서 발표한 무정이라는 작품은 우리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고 합니다. 민족을 배신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당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스로 소설을 쓰는 AI 딥러닝 기술 (0) | 2021.10.18 |
---|---|
인쇄 기술의 역사와 흐름 (0) | 2021.10.18 |
공상 과학 소설을 쓰기 위한 5가지 노하우 (0) | 2021.10.17 |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로 소설가가 된 김영하 (0) | 2021.10.16 |
대한민국 근대시의 흐름을 찾아서 (0) | 2021.10.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