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의 장편 역사 소설 금삼의 피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왕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인 싸움이 5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국민들 역시 사극과 같은 역사 드라마를 흥미롭게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제10대 국왕이었던 연산군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참 흥미로운데요.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 윤씨의 맏아들로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산군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장편 소설로 집필한 박종화님의 금삼의 피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한데요.
금삼의 피는 1936년 3월 20일부터 12월 29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연산군을 소재로하여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를 복위시키고자 일으킨 갑자사회를 작품화 시킨작품입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연산군의 상식을 초월한 횡포는 모두 비명에 죽은 어머니의 비참한 최후를 알게 된 데서 비롯하였다고 하는데요. 성종의 후궁으로 있던 윤씨와 정씨 중에서 윤씨가 연산군을 낳고 왕비로 책봉되게 됩니다. 그러나 왕이 정씨를 더 아끼게 되자 두 여인은 서로 질사하여 부적등을 사용하여 상대를 해치려 듭니다.
이러던 와중에 윤씨는 성종과 말다툼 끝에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어 정씨 일파에 의해 폐위도고 끝내는 사약을 받게 됩니다. 이 때 윤씨는 피를 토한 손수건을 연산군이 왕이 되면 전해달라고 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훗날 연산군이 왕이 되자 그는 먼저 억울하게 죽은 생모를 다시 복위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대왕대비나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갈등을 겪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연산군은 무오사회를 일으키고 이것을 계기로 연산군 주위에는 더욱 더 간신들만 모이고 연산군은 날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마침내 박원종 일파의 모반으로 연산군은 왕위에서 폐위됩니다. 이 작품을 쓴 박종화는 1901년 10월 29일 한성부 자암동 출신으로 1920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그해 발간된 문학 동인지 문우에 참여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후 시 전문지 장미촌에 오뇌의 청춘, 우유빛 거리를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1922년에는 문학잡지 백조의 발간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밀실으로 돌아가라’라는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잡지에서 그는 홍사용, 박영희 등의 시인들과 만나게 되었으며 이들은 곧 ‘백조파’라는 동인팀을 결성하게 됩니다.
당초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 시를 발표하였지만 점차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창작욕구가 높아지면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접고 소설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금삼의 피가 박종화의 첫 장편 역사소설로 1936년 3월 20일부터 12월 29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1938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게 됩니다. 1924년의 처녀시집 ‘흑방비곡’과 청자부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은 1940년 매일신보에 연재하고 1942년 단행본으로 간행된 ‘다정불심’을 비롯하여 다 역사소설로 알려집니다.
광복을 맞이하던 시점에 그는 전 조선문학가협회 부회장을 맡았으며 1947년에는 성균관 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 예술위원회장을 겸임하기도 합니다. 이후 1957년 성균관대학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2년에는 교수를 정년퇴임하였습니다. 1964년에는 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로도 통일원고문,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내게 됩니다. 또한 이름난 문인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되기 마련인 작가 명의의 문학상을 살아생전에 제정한 문학자로 1966년에 정부로부터 제1회 5.16민족상을 수여받으면서 상금을 걸고 자신의 호를 딴 월탄문학상을 만들었습니다.
1969년 마지막 작품인 ‘세종대왕’을 발표하였으며 그 뒤로도 문학계의 원로로 대접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1981년 1월 13일 향년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종화님의 소설은 미디어화 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금삼의 피 역시 1961년에 ‘연산군’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으며 그후에는 다정불심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1966년 작품인 양녕대군과 세종대왕은 1996년 큰 인기를 끌었던 용의눈물의 베이스로 미디어 믹스화가 되었으며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도 월탄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이후 대하드라마 ‘왕의 여자, 신돈’ 등 다양한 작품이 미디어화 되었습니다. 역사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자료이므로 사람들이 창작된 소설 보다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만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큰 맥락의 역사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 등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수많은 역사소설을 집필한 박종화 님은 상당한 노력가라고 생각되는데요. 때로는 역사소설을 잘못 집필하면 대중의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소설 작업을 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의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는 대표적인 자료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우리나라가 현재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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